나에게 준 건 

 ‘한 때 좋아했었다’는 추억이 아니다. 

 

 

 

 

 

 

 

오늘, 한국 프로 농구계 수지 병찬햄의 자살 이슈 이후 딱 1년째 되던 날. 박병찬 팬카페에서 죽치던 사람들을 모아서 추도회 겸 교류회를 연 건 솔직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형이 아무리 열심히 농구를 했었고 엄청나게 잘생긴 사람이었어도 이제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중이었으니까. 사람 다 빠진 팬카페의 5명만 빼고. 그 리젠 없는 게시판에 살아있는 5명이 오늘 밤 모여 교류회인지 추도회인지를 하기로 했다. 

 

 


 

 

“이건 다들 절대 진짜 진짜로 절대로 못 보셨을걸요? 저한테 답장을 주셨거든요. 이건 프런트도 매니저 통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보낸 거라 내용은 저 말고는 절대 아무도 모른다 아입니까?”

 

 

나 기상호, 닉네임 babyshark. 병찬햄에 대한 트루 러브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편지도 오늘 사람들 앞에 풀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닉네임 강동원에게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박병찬 자살 아닙니다, 타살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 나온 이유는 병찬이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섭니다.”

여태껏 조용히 파일철을 감상하고 있던 닉네임 강동원 씨가 침을 튀기며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이유라는 건 내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아니. 뭔가 이것저것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형이 스스로 불을 지르고 그대로 분사했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만 반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타살…? 어째서? 우리들은 분명 화기애애하게 나의 인터뷰 모음 스크랩 파일과 이것저것 형의 유니폼과 싸인지를 꺼내놓고 서로 한 명 팬으로서 누가 더 박병찬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랑하고 있었는데 분명,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래서 강동원 님은 그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그거 관계자 밖에 모르는 사실 아입니까?”

멍청하게 듣고만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닉네임 강동원 씨가 하는 말을 천천히 되짚어 보니 그건 정말 나 정도는 되어야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형이 숨져있던 곳이 창문이나 문이 아닌 안쪽의 옷방이라는 거 하나.

 화재 직전에 구단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거 둘. 

 

내가 아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원하기만 하면 이런 정보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뭐 꼭 손대면 안 되는 정보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제가 달밤에 미친 경찰 수사관이거든요.”

 

 

닉네임 강동원를 향해 한마디 한마디 뱉는데 속에서 이상한 것이 끓었다. 내 신분까지 말을 뱉자마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통에 소란이 있었다. 겨우 다섯밖에 없는데 어쩜 이렇게 분주한지. 그래도 한가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었다. 왜 죽은 형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걸까. 그냥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끝끝내 가십거리로 만들려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사랑하는, 내 우상이자 아이돌인 병찬이 햄을 위해서 오늘 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여기서 찐팬 아니신 분은 좀 손 좀 들어주실래요?”

 

 

아까와는 다르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내 말투에 머뭇거리던 닉네임 강동원 그러니까 전직 담당 매니저 씨와 '아 저는 팬 된 지 1년밖에 안 됐긴 한데 그래도 들어야 돼요?' 같은 소리를 하는 머저리와... 나를 뺀 모두가 손을 들어왔다. 

머저리는 그것도 사실 1년 전쯤엔 이름 석 자만 알고 있었는데 왠 슈퍼마켓에서 일하던 중에 박병찬 선수가 자기 집이 이 근방이라고 뭔가 이거저거 사러 와서 사진도 찍어 주고 싸인도 해주고 해서 그때 실물 보고 좋아졌다고 말했다. 1년이라며… 형이 죽은지가 이제 1년 인데 죽기 직전에 빠졌단 말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는 저 인간은 도대체 뭐야?

 

“뱅차이 행님이 집에 바퀴벌레 나온다 하셔가지고 제가 집에도 함가가 잡아 드렸는데요. 그기 잘 안 잡혀가지고...”

 

얘는 박병찬 선수 집에도 가 봤네.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졌다. 머리속에서 부러운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교차하는 소리가 났다. 당연하다. 형네 집 주소를 안 것도 답장이 와서였지, 난 몰랐어야 했던게 정상이다. 팬 싸인회를 할 때 조차 나와 눈 마주치는걸 어색해 했던 사람이니까. 그래 안다. 나도 직접 주소를 달라고 한 적 없었으니. 물론 팬이랍시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순진무구한 사람이 내가 앓던 병찬 형일 줄은... 햄은 상상 그 이상의 사람이구나. 정말 편지를 몇 백통을 보내도, 답장은 단 한 번 밖에 안 해주는 사람이라서 정체 모를 사람에게도 그리 살가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  바퀴 잡고 피곤하다 캐가 쿠키 구우시던거 있길래 주방 정리 쫌 해드렸죠. 그리고 펭귄 모양 병이 몇 개 있길래 그날 산 올리브 오일이랑 이거저거 정리도 좀 해드리고…”

 

 


 

 

요약하자면 이랬다. 

Babyshark 님은 그냥 편지나 몇 백 몇십 통 보냈던 사람이고, 그러니까 날 제외한 여기 네 명은 매니저, 고등학교 동창, 은사, 햄 번호도 따고 집에도 가 본 사람이었다. 여기서 절망감을 느끼면 되나? 지금까지 내가 일등 가는 팬이라고 자부했는데 나는 겨우 스크랩이나 하고 인터뷰나 읽은 게 다라고? 그저 웃겼다. 정말 지고지순한 순정팬으로서 지위가 위태로웠다. 아니 솔직히 약간 아니꼬왔다. 이럴 때일수록 아닌 척하는게 상책이지.

고등학교 동창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가를 훑으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형이 매년 생일 챙긴다는 사람이 전데요. 형이 쿠키 굽던 건 저 줄 건 아닌 것 같아요. 생일이 한참 남아서…“

“이래 친한 사람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었나보죠. 뭐.”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게 되는 것이 어쩐지 나이를 먹고도 나잇값을 하지 못했다.

 

“아니지. 형 요리되게 못하는데? 저한테 생일 선물이라고 주는 것도 다 실패한 요리라서 아마 모르는 사람은 주고 싶어도 못 줬을걸요.”

 

초원이라고 했던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그 사람은 생일 축하에 약간 악이 받쳤던 모양이었다. 부럽구로. 그런 멋있는 형아한테 맛있는거 받았으면 복인 줄 알아야지. 나 같았으면 덜 익은 컵케익이건 다 탄 팬케이크건 싹 다 먹고 배탈이 난다 해도 그 배탈마저 행복했을 텐데. 아니 잠깐 그건 먹지 말고 보존 처릴 했어야 했나?

 

 


 

“그런데 왜 병찬이는 문 앞까지 달려 나왔다가 다시 안쪽 방으로 돌아갔을까요? 거긴 창문도 없었는데 ”

 

이번에는 은사님의 턴인가. 표정 관리라는건 참 어렵네. 프로 농구선수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쓰게 웃으셨다. 그때 그대로 뛰쳐 나왔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말이 생략된건 그 분을 처음 만난 나도 알 수 있었다. 연이어 매니저가 입을 나불거렸다.

 

  “아 이건 직접 가본 사람 아니면 모르는 얘기죠? 글쎄 그 안에 편지가 있었다나요. 한 몇 백 통은 되는 것 같던데.”

 

 

 

 

숨이 막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었으면 분명히 그렇게 했으리라. 테이블을 향해 주먹을 내리치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 분위기에서 입을 뗀 건 이초원 하나뿐이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다 해야 하는 성미인 모양이었다.

 

"그... 아까부터 걸리는 게 있었는데, 아까 저 분이 그날 형 베이킹 하고 있었다고 했죠?"

"그래서 뭔데요. 뭐가 남았는데요 이제."

"어 음... 그러니까... babyshark님... 생일... 이…?"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입을 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일이요.”

'가비지타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뱅초뱅 / 졸업  (1) 2024.06.01
초뱅 / 클리닝 서비스는 유료입니까?  (0) 2024.06.01
뱅초 / thumb cut  (0) 2024.06.01
뱅쫑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0) 2024.06.01
승재 / 니가 그러니까 내가  (0) 2024.06.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