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잖아.”
수습할 수 없는 말을 던지고 임승대는 전화를 끊었다. 좋아한다며, 좋아한다며! 싸울때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는 말, 다 거짓말이야. 이상하게 전학 오고 나서도 그 전에도 진재유랑 전화를 하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마음 하나는 정말로 복잡했다. 좋아한 것도 임승대가 먼저, 고백한 것도, 그리고 전학 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임승대가 먼저인데 이상하게 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인지.
서운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것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욱하는 마음에 되려 눈물이 고였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게 그 와중에 또 낯간지러워서 벽을 쾅 내려쳤다. 뭐가 부끄러운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냥… 진재유가 서울에는 안 오겠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속상했던 거라면 믿어 질까?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저랑 같은 팀이었는데, 이렇게 그냥 결심 한 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찢어져도 재유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 거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만 마음 쓰이는 거지?’
*
진재유는 달리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지치지 않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할 때는 그 이상의 힘까지도 쓸 수 있었다.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냐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허투루 하루하루를, 또 한 경기, 한 경기를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리 서울 아닌 부산에서라 해도 진재유가 농구를 하는 데는 한 톨 아쉬운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임승대가 지 멋에 취해 고백하고 저 혼자 멀리멀리 떠난 이후로 이어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억지 롱디는 그 와중에 정말 힘들었다. 나쁜 놈, 나쁜 놈. 좋아하는 게 순 지 혼자인 줄 알지. 두 사람 다 온종일 훈련하고 모두 나가떨어진 밤 중에 몰래 운동장 가를 걸으면서 시덥잖은 전화를 할 때조차 승대는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랬다. 그래 심지어 꿈에서도. 그게 문제였나.
*
‘뭔데, 이거…?’
땡볕이 미친 듯이 내리는 무더운 날씨, 8차선 도로가 텅 비었고 아스팔트 열기로 인해 그저 세상이 반 녹아 있었다. 임승대는 자신이 왜 그런 도로 복판에 서 있는 지 몰랐다. 그저 무더운 여름이라 반소매를 돌돌 말아 올려 닿는 더운 바람이 닿는 면적을 줄였다. 은색 스포츠카 한 대가 그런 임승대를 지나쳤다가 무심한 듯 아닌 듯 코너링을 하며 돌아 나왔다. 운전자가 멋에 미쳤는지 타이어 나가는 건 하나도 안 아까운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멋대로 갈긴 스키드 마크가 유려하게 펼쳐져 있었고, 타이어가 공회전 하는 소리는 그 답게 시끄러웠다.
말도 안 되는 땡볕 더위 속에서 그 모든 광경을 멍청하게 그걸 보고 있는 임승대의 눈앞에는 이제 믿을 수가 없는 일이 또 한 번 더 일어나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운전석에는 징 달린 라이더 재킷을 걸친 진재유가, 머리에는 하얀 터번을 감고 목에는 뭔가 꼬부라진 글씨로 문신을 하고 있었다. 평소 진재유에게나 보일 법한 머뭇거림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얼굴로 임승대를 대하는 진재유는 정말 새롭기 그지없었다. 거의 마치 자신에게 고백 받기 직전, 아니 직후 같았다.
“타라!”
손짓으로 타라고 말하는 이 진재유는 왜 스포츠카를 왜 몰고 있는지, 이 이정표 없는 아우토반에서 임승대를 어떻게 찾아왔는지도 하다 못해 무슨 일이 있었는 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웃지도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재유의 옆자리에 무심한 척 올라타면 이제 무심결에 왼손을 뻗어 벨트를 당기는 임승대가 있었다.
“진잼민! 벨트는?”
“뭐 그, 촌스럽그로”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능숙하게 앞머리를 빗어 넘기고 머리끈 안쪽으로 다듬어 넣는 진재유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쩐지 빨갛게 익어서 꿈속 재유가 기어를 중립에서 1단으로 바꾸는 손에 마저 시선을 두고 하던 생각을 했다.
‘그 사이에 면허 땄다고? 그것도 수동?’
임승대는 그렇게 시시하게도 정말 별거 아닌 곳에서 우습게도 서서히 여기가 꿈 속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겁쟁이 진잼민이가 이런 걸 땄을 리가 없잖아. 지금 벌어지는 이건 꿈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해서 절대 죽어도 자신이 모르는 진재유의 존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더더욱 믿기 싫었다. 그래 봐야 당장 선글라스를 쓰고 도로를 질주하는 이 진재유는 단순 허상이 아닌 것 같은데도! 하지만 그것이 꿈이기만 바라는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아무도 없는 도로를 내달리는 재유를 바라 보고만 있었다.
그래도 뭔가, 가슴이 자꾸 허전하고 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옆자리에 앉은 게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하게 고개를 돌려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일어나서는 안 될 것 같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 아마 이것이 잘못될 거라는 전조 증상? 이게 만약 그런 거라면 임승대는 이 느낌을 고백하기 전에도 알고 있어야 했다. 왜냐면 그건. 바로, 그 멋있는 스포츠카가 반파 나기 직전, 느리게 이어지는 필름 같이 전봇대에 처받는 그 진재유를 감싸 길쭉한 팔다리로 당겨 안으려고 했기 때문은 아닐까?
제 손으로 맨 벨트 때문에 임승대는 진재유를 쉽사리 끌어안을 수가 없었다. 한차례 그 충격으로 떨어진 선글라스가 부서져 제 역할을 못 하는 꼴을 보자 마음이 급했다. 혹시 눈이라도 다쳤으면 어떻게 해. 눈앞으로 날아오는 유리 파편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고 있을 수 없었다. 손놀림으로 안전띠를 풀고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 진재유는 액셀러레이터를 더 세게 밟아버렸는지 앞 범퍼가 완전히 찌그러지도록 전봇대를 더 들이받은 후 연기가 하얗게 퍼지는 엔진을 사이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칠갑이 되어서는 다시 무심하게 물었다.
“안 인날끼가?”
*
새벽녘, 진재유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일어나는 것을 보고 숙소 사람들은 단체로 놀랐다.
“힘들면 오늘은 좀 쉬지 그래.”
꿈 속에서 피칠갑을 하고 일어나라고 했던 건 분명 진재윤데 이상하게 그 말에 소름이 돋는 것도 진재유였다.
“됐다 마.”
그런 말들을 뒤로 하고 틱틱 찾아보는 전화기 속 네이버 해몽에는 이런 것들이 적혀 있었다.
어떤 기관에 청탁한 일이 순순히 받아들여지게…
'장도 진짜 안 간다고. 아 진짜 와 이래 신경 쓰이게 하는데.'
아침 훈련의 일환으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 모두가 진재유를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전신 식은땀이 흐르고도 이를 악물고 달리는 그는 이상하게도 오늘 장도고의 달링에게 아침 인사를 하지 않았다.
*
아무리 분위길 잡고 해 봐라. 전화로 애원을 하든 간청을 하든 간에 니가 해 봐야 뭐, 일단 내가 받아야 말이지. 며칠 서울에서 오는 전화를 피하던 재유는 이제 잠잠한 폰에 시선을 던지며 잠시 이겼다는 생각에 잠겼다. 그치만 그래서 결국 내 절대 안 간다는 말, 아직 한 번도 말 한 적 없지 않나? 하하 설마 정말 내를 부산서 빼내려고 이렇게까지 전화를 해 댄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어야 하는데.
날이 날인지라 너무 더웠고 아무리 불러도 임승대는 절대 눈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손으로 눈가를 세게 비볐다. 아니 여기 나올 리가 없지, 금마 서울 갔다 아이가. 그것 만이어도 모자랄 텐데 얼마 전 꾼 꿈이 너무나 기분이 나빴다. 괜히 금마한테 큰소리 높이고 나서 꾼 꿈이어서? 아니면 정말 그렇게 서울로 붙들릴까 봐? 어느 쪽이어도 차일피일 미루고 피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일단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헤어지든 아니면 계속 사귀든 할 거 아니냐고. 이런 식의 도피는 정말 좋지 않았다. 소위 진재유 답지 않았다. 남자라면 남자 답게, 진재유라면 진재유같이. 해야 할 일은 해야!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되는 일이란 게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냥 태평한 하늘을 한 번 바라봤다. 그 때 임승대가 서울로 나르기 전날 밤 고백할 때도, 아니 그 전에 작년에 가기 전에도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뭐가 어찌 되어도 진재유가 손을 뻗으면 잡히는 게 분명 임승대인 건 정말 틀림없는 사실인데, 솔직히 이게 어쩐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길한 일은 꿈에서나 일어나는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싸우고 이렇게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는데? 이렇게 두고 그냥 간다구? 절대, 절대로 두 번은 그냥 둘 수 없었다.
*
교실에서는 수업이 한참이었고 창 밖이나 겨우 보던 학생들이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들의 눈에는 학교 정문에서 어울리지 않는 노란 교복이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단독 행렬은 제법 거들먹거리는 몸짓을 했지만 정말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더 멀리서 이 더위를 뒤로 하고 달리는 진재유는 오늘 사과를 하든 받든 간에 둘 사이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했다.
그것에 완전히 골몰하느라 아마 아무것도 못 본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붙은 건 단 한 명 때문이라. 그 큰 그림자는 달리던 모든 사람들의 정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결의에 찬 걸음은 재유의 코스를 막고 쿵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끌어안았다. 안타깝게도 그 누구에게도 울먹이는 소리는 나지 않았고 임승대는 단지 진재유가 꿈에서 보다 멀쩡한 지 확인할 뿐이었다.
마주보는 두 사람은 결국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깟 꿈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부터 시작해 티격태격 하더니 그렇게 멀리 있어도 같은 꿈을 꾸는 거냐며 픽 웃고는 진짜 면허를 딸 때는 서로 허락 하에 하기로 합의하고 운동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기이할 정도로 생생했던 꿈에서 흐르던 음악 얘기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었다.
'가비지타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뱅초뱅 / 졸업 (1) | 2024.06.01 |
|---|---|
| 초뱅 / 클리닝 서비스는 유료입니까? (0) | 2024.06.01 |
| 뱅초 / thumb cut (0) | 2024.06.01 |
| 상뱅상 / 프로 농구선수 박병찬 사망 1주기 추도회 겸 교류회를 연 팬보이 기상호가 겪은 이상한 일 (2) | 2024.06.01 |
| 뱅쫑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0) | 202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