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좀 있어요." 

찰싹 때리는 손이 매웠다. 

"들어보라니까, 초원아.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 않아?" 

"아니! 그럼 이게 잘못한 게 아니고 뭐란 말이에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안했지!" 

 

초원은 있는 힘껏 병찬의 등짝을 한 번 더 때렸다. 접수대에 접수를 하는 와중에도 또 한 차례를 더. 그 광경을 보며 접수대의 직원은 무슨 산만한 덩치의 남자들이 나잇값을 하네 못하네 등 실없이 티격거리는 것을 지켜보다 겨우 한 마디를 했다. 

 

"저희 병원 처음 오셨나요?" 

"아! 네. 이름은 박병찬이구 나이는 만으로 xx살 xx년생이에요 아 그… 주민 등록 번호는…." 

"개인 정보는 본인이 작성해 주세요. 혹시 보호자로 오신건가요?" 

 

초원은 여기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보호자

 

 

 

 

 

 

우리 사이에서 보호자라는 단어도 닿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만.

 

"아뇨. 보호자는 아니고 친한 동생이에요."

 

접수를 하고 시무룩해진 이초원의 얼굴을 끌어당겨서 손으로 감싸고 토닥거리는 틈에 금세 마음이 녹았다. 

별 수 없다. 바깥에서까지 이렇게 달래주는데 어떻게 화를 풀지 않을 수가.

 

 

 

"엄마 저 오빠 삐졌나봐. 애기도 아닌데. 근데 봐봐 저기 잘생긴 오빠가 막 달래준다?"

 

 

 

반대편에 진짜 보호자와 같이 온 어린 아가씨가 둘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고 얼결에 손을 풀어버렸다. 이초원은 아직도 바깥에서의 스킨십에 따르는 일련의 특이한 시선으로 닿는 남들의 그 눈이 부끄러웠다. 보호자 노릇 하고 싶어서 그러냐고? 아니 못하니까 이런 거지. 거기다 입술이 불퉁 나온 초원을 달래는 그의 남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안 괜찮은데 형은 괜찮나봐.

 

 

 

"수술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괜찮아~ 괜찮다니까!"

 

등이며 어깨를 토닥거리기도 잠시, 박병찬은 뭔가 생각에 빠졌다.

 

 

 

 

 

 

 

 

 

클리닝 서비스는 유료입니까?

 

 

 

 

 

 

 

 

 

"와 준향대 진짜 대단한 학교다."

"저희 학교도 제법 대단한 모양인데요."

 

 

 

한가로운 아침, 피씨방에서 막 두 사람 다 떨어진 기숙사 통지서를 클릭하고서 병찬이 초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할래?"

"네? 뭘요."

"자취, 형이랑."

 

 

즉시 시선이 바깥으로 튀는 초원을 느긋한 얼굴로 보던 병찬은 이 귀여운 전리품이 품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틀어쥐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돌아보지 않으려는 초원을 향해 턱을 한껏 당기고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애원하는 투로 이름을 부르는 그 얼굴은 제 아무리 모르는 척 하기 달인이라 해도 넘어갈 수 밖에. 

 

 

박병찬과 이초원의 동거는 생각보다 건조했다. 마치 숙소 생활 같은 동거. 그렇게 둘이서 같이 계약한 집에서 장장 다섯번의 재계약을 하고 정말 만 5년을 꽉 채우고 나자, 사귀자는 이야기는 결국 이초원이 먼저 하게 되었다. 기실 고백을 누가 먼저 하는지는 서로에게 정말 별 대단한 일은 아니라서. 실은 마음이 있는데도 5년을 이 모양인 게 웃기기도 했다.

 

그래, 좋아하는 것에 우열을 두는 것은 멍청한 짓이고 그 좋아하는 거 앞에 두고 제일 좋아하는게 뭐냐고 묻는건 더 멍청한 짓 아닌지.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들으면 기분이 정말 영 그렇기에.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박병찬에게선 확언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이초원은 그 날 세 번이나 마음이 상했었다. 형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이초원에게 박병찬은 답안지 없는 문제집이나 마찬가지라서, 림 없는 골대 같아서 박병찬이 물어보는 것은 항상 똑같이 되묻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게 뭐예요? 나를 좋아하는게 맞아요? 좋아하기는 하죠?

 

그 답은 몰라도 암묵적으로 전부 그러하다고 동의를 하는 두 사람은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초원은 아침에 못 일어나는 병찬을 두고 조용히 씻고 강의를 들으러 나갔다. 병찬은 그런 초원이 타이핑 소리에 깰까봐 저소음 키보드를 샀다. 서로 받는 배려가 깊어갈 수록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거리감은 예전보다 점점 견고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쪽은 박병찬이라. 

 

조심성 없는 병찬이 방 여기저기 쌓아둔 물건 더미를 뒤지느라 늦게 들어온 이초원에게 수신호로 대강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서는 초원아 혹시 귀이개 봤냐? 하는데 이미 이초원은 욕실에 들어간 후라 들을 수가 없었다. 매정하기는.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올 때 까지 기다리더니 이젠 거의 막무가내였다. 

 

 

나 귀 파주라. 여기 안에 너무 간지러운데 혼자서는 잘 못 건드리겠어 도와주라 초원아. 올려다보는 얼굴에 시선을 뺏긴 채로 이초원은 주저앉아버렸다. 너 기다리다가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초원의 오른쪽 무릎에 고개를 올려 놓고 간지러워 죽겠다고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 침음을 삼키는 초원을 보며 병찬은 킥킥 웃었다. 

 

 

 

 


 

 

 

 

그 해 겨울은 조금 일찍 찾아왔다. 겨울 맞이 차원에서 보내준 귤을 초원이가 잔뜩 까 두고 그걸 주워먹고서는 또 한 조각씩 초원이에게 먹여도 주는 이 상황에서도 둘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형 귀 안쪽으로 빠져 버렸는데 이 안에 한 번 파봐도 괜찮겠어요? 응. 그냥 해버려 깨끗하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잔뜩 움츠렸다. 금속으로 된 꼬챙이가 안쪽을 긁어내는 게 생각했던 것 보다 그렇게 응석부리는 모양으로만 비치지도 않았다. 

 

"아파요?"

"아니."

 

그러고서도 병찬이 움찔거릴 때 초원은 더 놀라서 바로 귀이개를 빼 버렸다. 아냐 괜찮아 형이 참을게 그냥 해봐. 응 거기. 그쪽에 좀 더 깊게 더 들어가도 돼. 한참의 사투 끝에 이제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져 오늘은 이제 괜찮다며 초원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원래 이렇게 긴장하는 애가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고 그러냐. 내뱉는 말에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얼굴이 귀여웠다. 가끔은 이렇게 해도 괜찮겠는데. 아니 자주 하자. 그 자주 있게 되자마자 그 일은 아주 사소하지만 큰 일로 결국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병찬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스킨십 없는 애인에게 들러붙을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기회를 뺏어가냐고.

 

 

 


 

접수처에서 한바탕 하고 앉아 기다리는데 초원이 말을 걸었다.

 

"형은 왜 아픈걸 왜 자꾸 참으려고 해요?"

 

 

 

박병찬은 이초원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들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 걱정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아마 기본적으로 사람이 다 그렇듯이 초원이도 다른 무엇보다 병찬이 아프다는 것을 싫어하는게 맞을 거다. 누가 다치고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할까. 하지만 그것도 역시 조금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걱정하다가 돌아버리는 꼴을 봐야 형은 속이 시원해요? 아니 진짜 애도 아니고 이러는건 너무 심하잖아요."

 

애초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처음 시작한 것은 병찬이라 어느 한 구석에도 숨을 곳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치만 니가 내 기분을 몰라서 그래. 박병찬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이비인후과의 접수대로 향했다. 귀 안의 이물감이 기분 나쁜 건 병찬인데 옆에 따라 붙은 초원은 재재재재 잔소리가 길었다. 지나가는 간호사가 병찬에게 주의할 점 몇 가지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이초원이 긴장한 투로 끼어들어 말을 잘랐다.

 

"저, 혹시 보호자도 필요한가요?"

 

초원의 그 걱정 어린 물음에 박병찬은 웃음이 팍 튀어버렸다. 

 

"친구분이 걱정이 많으신가 봐요."

"아, 아니 수, 수술할까 봐…."

 

그렇게 이 부끄러움의 몫은 초원이 가져가는 줄 알고만 있었다. 호명하는 소리에 병찬이 졸고 있던 초원의 무릎을 두드리기 전 까지는.

 

"저도 같이 들어가요?"

"같이 안 갈 거 면 너 왜 데려왔게?"

"네?”

”내 보호자 해 줘야지. 니가 내 남편이잖아.” 

 

마지막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이초원의 귓가에 속삭여버려서 이제 초원에게만은 병찬의 팔에 끌려나가는 이 복도가 꼭 버진 로드 같았다. 

 

 

"박 병찬 님-!"

 

 

다시 한 번 부름이 들리자 병찬은 결연한 얼굴로 대답을 한 번 하고 오른팔에 초원의 팔을 꼭 끼고 씩 웃으며 그대로 진료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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