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고등학교의 겨울방학은 다른 지역보다는 좀 늦은 편이다. 2013년 1월 16일. 부산에 눈이 내렸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인천에는 내렸고, 심지어 포근하지도 않아 상당히 춥더라. 교정은 이미 눈밭에 미끄러진 타이어 자국과 발자국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겨울 방학과 종업식과 졸업식을 한 번에 같이 치르는 거야 보통 있는 일인 것이고 그냥 그렇게 몰아쳤기에 바쁜 일정이라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14년 만에, 드디어! 초등학교 입학부터 지금 장장 14년만에 고등학교를 마치는 이 졸업식은 나름 특별한 일이 맞았다.
쾅!
그 넓은 체육관에 사람은 하나. 세계관 최강자 타이틀을 거머쥔 이 박병찬이 내려다 꽂는 덩크는 보는 눈이 없어도 아주 짜릿했다. 더해서 진짜 어른이 되는 기념도 포함해 장장 14년 초중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세리머니를! 그래도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나 신이 나는데!
코트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기분이 상쾌했다. 눈 때문에 걸음에 더 힘이 들어가는데도 그리 화가 나지 않았다. 정말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학교. 외관에 쌓은 벽돌은 이 학교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안전하게 아이들을 지켜왔는지 새삼스레 보였다. 이런 평범한 학교에서 그나마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바뀐 교복 디자인 -모두 이건 아니라고 말했다- 과 또 5년도 안 된 신생 농구부의 협회장기와 쌍용기 8강 축하 플래카드의 존재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졸업하는 늦깎이 졸업생이 있다는 것이겠지.
다른 아이들보다 1년을 더 기다렸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박병찬은 그대로 체육관을 나와 마지막으로 눈 쌓인 운동장을 빙 돌았다. 추억 이라면 질리도록 쌓았다.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학교. 학교. 학교. 세상에 대학 가는 데 14년이 걸리는 게 말이 되냐? 그런 생각을 하고 그대로 픽 웃었다. 웃음 끝에는 희미하게 울렁거림이 섞여 있었다.
교내 방송으로 폭설로 인해 음향 장비 세팅이 어려워 교실에서 방송으로 졸업식을 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박병찬은 아직도 간간이 내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교실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눈부시게 하얀 눈밭에 닿던 시선의 끝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3학년 10반 교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팻말이 걸렸다.
복도에는 부모님 또래쯤 되는 처음 보는 어른들이 한껏 꾸미고서는 자기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는지 보려고 창가를 향해 서성거렸다. 그 복도 사이에서는 나이를 스물하고 두 살 더 먹도록 대학 못 간 아들이 부끄럽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키우는 데 지쳐서 그랬는지 몰라도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학부모 무리를 뒤로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복도 창가쪽 맨 뒤, 내 자리에는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어?“
밖에는 줄 사람이 없고 안에는 받을 사람이 없었는데 왠 꽃?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버려 두면 대강 찾으러 오겠거니. 암만 생각해도 내 것도 아닌데 싶어 관심을 접고 책걸상에 몸을 구겨넣었다. 턱에 팔을 괴고는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끝의 끝까지 이제 마지막으로 듣는 지겨운 교내 방송을 향해 고개를 세워 경청하는 척 하고서는 즉시 딴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준향대학교 체육교육학과 13학번 박병찬.
이제 새로운 딱지가 하나 더 붙는다. 나 드디어 대학 간다! 이제 더는 규격 외 고등학생이 아니라니. 종업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아래 학년들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먼저들 귀가하는 학생이 있다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래, 안녕이다. 이 꼬맹이들아! 끝도 없이 길어지는 졸업식 축사를 들어야 하는 당장 처지에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이제 곧 전부 끝난다. 남들보다는 2년이 더 걸렸지만 괜찮아.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눈을 꼭 감고 소리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환호성 사이에 이상하게 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뭔가 안 챙긴 게 있는 것 같은데.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마지막으로 안전하고 확실하고 정확하게 졸업식은 교실에서 끝났다. 이 추위에 나가서 안 한게 어딘지. 같은 반 동생들은 담임선생님께 우르르 모여 달려들었다. 어린 동급생들이야 그러려니 두고 나는 우리 선생님 뵈러 가야겠다 하고는 짐을 챙겼다. 사물함에도 책상 서랍에도 든 게 없었다. 그래, 교실에 올 일이 있어야지. 의자에 걸쳐둔 하얀 롱패딩을 도로 입고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형!”
신발장 앞에 앉아서 깔창을 밀어 넣는 동시에 익숙한 고성이 귓전을 울렸다. 초원이 그 책상 위에 두고 온 노란 꽃다발을 들고 달려들었다. 부딪치기 직전 그 앞 몇 걸음을 남겨두고 병찬의 품에 그 꽃다발을 던지듯 안겼다. 한참을 찾았는지 멍청하게 선 내 얼굴을 보던 초원이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형은 진짜.”
눈물을 어떻게 흘려야 할 줄 몰라선지 그 입에서는 먼저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생이 이렇게 많은데도 아직 우는 동생을 달래주는 일에는 영 익숙하지가 않네. 마음이 흘러내렸다. 분명 아까까지 그래도 좀 홀가분해도 걸리는 게 있다 싶었더라니, 어쩐지 이게 마냥 시원하기만 한 게 아닌게.
“정말 치사하다 진짜! 어떻게 인사도 안 하고!”
우리 조형 고등학교 최고의 슈터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서럽게 울었다. 그것도 너무 오랜만에 울었나? 우는 게 뭔지도 잘 몰랐는지 한참 다 큰 애가 다섯 살배기 어린애 울듯이 안겨서는 꺼이꺼이 한참을 울었다.
“아이고, 왜 울어 왜. 형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아이고! 뭐가 그렇게 서러워.”
어린애 달래듯 달래고 있으려니 우는 본인도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가슴팍에 안은 노란 프리지어를 내려놓더니 와락 안았다. 시근거리는 숨이 더웠다.
“그동안 고생 정말 많이 했어, 진짜로.”
“됐고, 두고 가지나 마요.”
품안에서 한참을 서럽게 울던 초원은 이제야 좀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도 못 들고 목 언저리부터 귀 끝까지 새빨갛게 변해서는 본론을 털어놓았다.
“어제 전화 왔는데 형이 간다는 그, 거기 저 추합이래요.”
멀뚱히 있는 내가 민망했는지 그러고 이초원은 다시 목 놓아 울었다. 세상에! 이런 다 큰 동생이! 거기다 쫓아오는 속도도 너무 빠른거 아닌가?
“같이 가자고? 이제 난 거기서 제일 큰형도 아닌데? 나, 이제 그냥 박병찬인데?”
하얀 패딩에 눈물을 발라가며 내미는 초원이의 큰 손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왠지 잡지 않았다간 이대로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창 시절의 마지막 전리품이라면 진짜 어른이 된 기념으로 가져도 괜찮지 않나? 떨리는 손을 들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초원이가 못내 멈추지 못해 훌쩍거리는 걸 바라보다 크게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네가 내 미련인가 보다. 두고 가는 건 역시 못하겠어. 그냥 계속 데리고 다닐래. 내민 손을 맞잡고 학교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눈밭에 발자국은 두 사람분이 나란히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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