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산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하게도 쉽게 잊히지 않는 감각이 있다. 수술대 위에서 마취제에 절어갈 때 느끼는 그것이 가장 비슷할지도. 새하얀 조명등 아래서 10부터 1까지 거꾸로 세어 내려가는 목소리가 귀에 어른거린다. 그다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 오른쪽 무릎은 살갗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붕대로 꽁꽁 둘러싸서 꽉 묶어버렸는지 감각 자체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야. 나는 그냥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병상에 누워서 생각을 정말 많이 계속 끝없이 했다. 그 사람 생각도 많이 했다. 역시 성과가 내고 싶었던 거겠지.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그렇게라도 하는 편이 조금 마음이 편하더라. 그래도 언뜻 드는 생각이 계속 자신을 좀먹었다. 그래도 왜 하필 나를 갈아다가. 나를 갈아다가 만드는, 어엿하고 훌륭한 성과! 승리! 우승! 그러고 나면 다 같이 행복한 결말을 이루고 나는 거기서 우승기를 흔드는 그런 결말을 모두가 원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몇 날 며칠을 하다가 쓰게 웃으면서 이제는 붕대가 감기지 않은, 그냥 흉터만 남은 무릎을 쓸었다. 이렇게까지 당하고도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으면 차라리 갈망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뒤처져야 했었던지 그 하루하루를 그리고 1년, 2년 늦는걸 받아들이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재활은 일상이 되었다. 양 무릎에 고무 밴드를 걸어놓고 할 수 있을 만큼 펼쳤다 내리는 데 드는 반복 횟수가 점점 늘어갈 수록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 늦어도 한 발은 더 디디는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다.
늦은 건 늦은 거, 떨치고 나가는 것은 또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늦어도, 뒤처져도 괜찮다는 말을 쉽게 쉽게 하는 버릇이 있다. 본인이 늦으면 화를 낼 거면서.
아마 그것을 깨달을 때쯤 된 것 같다.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도대체 이제 와서 누가 내 시간이 늦게 간다고 얼마나 화를 낼 것이며, 누가 나를 위해 평생 울어줄 것인지 생각하는 일도 전부 그만두었다. 내가 뒤처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는데. 그래도 뒤처지는걸 선택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만한 시간도 여유도 있었다. 전부 내 선택이야. 남에게 받은 명령이 아니라고. 나에게 불리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건 자신을 깎아서 버리지 않는 일은 오히려 마음에 좋았다. 그렇지만 재활은 절대 쉽지가 않아서. 처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부터 그다음에는 발을 내딛고, 걷고, 뛰고 달리고 그리고 볼을 튀기고 림에 메다꽂아서 점수를 내는 모든 과정에 순서가 있다는 게 조금 많이 힘들었다. 숨을 쉬는 것마저 배워서 해야 한다 생각하면 당신도 아마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을 다시 배운다는 게 진짜 힘이 드는 건 정말로 맞는데, 그래서 힘드냐고 물으면 그렇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 내가 즐거워지려고 하는 모든 것이고. 그리고 이거 이겨내면 결국 즐거울 거라서 퇴원하는 순간까지 웃었다. 지기 싫어서. 이 삶을 살아야 하는 건 난데 스스로 생존을 포기하기 싫었고 싫은 만큼 뒤처지더라도 노력이란 것을 해야만 했다. 예전의 나만큼은 아니어도 내가 했던 만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이런 마음은 정말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서 가끔가다 입 밖에라도 낼라 치면 초원이가 대표로 싫은 소리를 했다. 귀여운 녀석들. 이렇게, 이런, 잊을 수 없는 이십 일 년을 지내온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희는 아마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모르기만 했으면 좋겠다. 이런 건 전부 형아한테 맡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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